초록 |
農業-遊牧交界지대와 隋唐 長安의 역사妹尾 達彦 이 논문의 목적은 최근 隋唐 長安의 역사적 연구의 성과를 바탕으로, 장안성을 중국 대륙의 도성으로 역사상 위치지움과 더불어 나아가 유럽과 유라시아 대륙의 생태와 역사적 구조속에 위치지움으로써 장안사연구의 새로운 맥을 찾는데 있다. 수당 장안이 위치한 황토지대는 유라시아 대륙의 농업-유목경계지대에 인접하여 있다. 소위 '농업-유목경계지대'는 필자가 만든 표현으로, 농경지대와 유목지대의 경계지역을 의미한다. '半農半牧地帶' 혹은 '農牧接壤地帶'라고도 할 수 있는데, 농업과 유목·목축이 복합된 문화권을 이루는 지역을 가리킨다. 이 농업-유목경계지대는 유라시아 대륙의 생태환경과 생업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경계를 이루었다. 유라시아대륙의 중앙부나 동부의 농업-유목경계지대는 지구의 생태환경을 남의 농경과 북의 유목·목축으로 구분할 뿐만 아니라 띠모양으로 같은 생태환경을 동서로 만들었다. 농업-유목경계지대를 축으로 상이한 생태환경의 물산 교역(남북교역)과, 같은 생태환경을 횡으로 잇는 실크로드 교역(동서교역)이 맞물려서, 유라시아 대륙의 물류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물류 구조는 8,9세기 이후 연해교통로가 발달함에 따라 중요성을 서서히 상실하기 시작하여 18,19세기 근대에 이르러 물류의 주체가 완전히 연해교통로로 대체되었다. 육지로부터 바다로의 간선교통로의 전환이 근대를 가져오는 동력이 되었다. 황토고원지구는 농업-유목경계지대에 위치한다. 이 생태상의 조건이 황토지대를 중국대륙에 있어서 도시와 왕권의 주요 발상지를 이루게 했으나 10세기 이후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게 되었다. 육로에서 연해교통로로 물류가 이동함에 따라 유라시아대륙의 생태환경의 구조적 제약을 돌파하는 길이 열리게 되었고, 교역과 부의 매개지는 농업-유목경계지대의 육로 도시망으로부터 연해지역 도시망으로 전환하였다. 장안성은 농업-유목경계지대에 인접한 내륙의 농경지역에 입지하여 연해지역으로부터는 격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농업-유목경계지대의 성쇄와 명운을 함께 했다. 이 점이 농업-유목경계지대에 인접하면서 연해로도 접한 북경과 장안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장안의 역사를 개관하면, 8세기를 경계로 그 이전은 농업-유목경계지대의 육로에 의한 교역이 가장 번영한 시기의 수도로서 번영하였고, 그 이후는 수로·해로로 교통간선의 비중이 옮겨감에 따라 번영의 끝을 맞게 되었다. 당 전기까지 장안은 전근대를 상징하는 도성이었지만, 당 후기 장안은 중국 도시사상 근대 도성으로의 길을 내딛기 시작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