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
주자학의 문제의식이 불교에 의한 인간과 사회의 분리를 극복하는 데 있었다면, 다산학의 문제의식은 주자학에 의한 인간과 하늘(상제)의 분리를 극복하는 데 있었다. 또한 다산은 주자학이 여전히 불교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두 가지 방향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하나는 유학의 윤리를 외물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다시 설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희의 리학(理學)에 대해 상제를 정점으로 하는 천학(天學)을 건립하는 것이다. 양자에 걸쳐있는 핵심 개념이 성경(誠敬)이다. 다산이 보기에 윤리의 토대는 우주론적 원리가 아니라인간의 종교적 태도이어야 한다. 그래서 다산은 하늘에 제사지내는 성경(誠敬)의 태도로 인간을 섬기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질, 즉 인(仁)이라고 생각했다. 달리 말하면 상제를 대하는 사천(事天)의 태도로 자기를 수양하고 타인을 대하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일상의 합리화’보다는 ‘일상의 성화(聖化)’를 지향하는 다산학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다산 직후에 등장한 동학(東學)에서 보다 강화된다. 다산학과 동학은 모두 상제 또는 하늘에 대한 섬김과 외경의 태도를 인간 윤리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리학(理學)이나 기학(氣學)보다는 ‘천학(天學)’으로 명명될 수 있다. 기후변화 시대를 지칭하는 인류세는 인류에게 행성 지구의 두려움을 자각시켜 주었다. 다산의 천학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바로 이 “외경의 감각을 회복하라”는 데에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