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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사람의 체온이 점점 낮아진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출처: Shutterstock) 미국 캘리포니아의 비영리 연구기관 버클리어스에 따르면 지난해 지구는 1850~1900년 평균기온보다 1.24°C 뜨거워졌다. 불과 10년 전인 2012년과 비교해도 평균기온이 0.24°C가량 오른 것이다.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이산화탄소, 메탄 등 온실가스 배출이 늘면서, 지구는 점점 더워지고 있다. 사람의 체온은 어떨까? 햇빛이 쨍쨍한 날 열이 오르면 우리 몸도 예전보다 따뜻해질 것 같다. 땀이 체온을 조절해 준다지만,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니 체온도 덩달아 상승했을 거란 추측이다. 사람 체온, 150년간 0.4도 넘게 줄어 그림2. 사람의 정상 체온이 약 37도라는 것을 발견한 독일의 의사 카를 라인홀트 아우구스트 분데를리히가. (출처: Wikimedia Commons) 사람의 정상 체온이 대략 37도라는 사실은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 전에 처음 밝혀졌다. 19세기 활동한 독일 의사 카를 라인홀트 아우구스트 분데를리히가는 병원을 방문한 환자에게서 얻은 체온 데이터 수백만 건을 통해 사람의 정상 체온이 37℃라고 결론지었다. 이후 측정 기기가 발달하면서 이 값은 약간 낮게 수정됐다. 지난 2020년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분데를리히가의 측정치가 정확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미국의 남북전쟁 참전용사 기록, 국민건강영양조사 등에 있는 약 68만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남성과 여성의 평균 체온이 10년마다 0.03°C씩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현대인의 평균 체온은 약 36.4℃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 결론들을 종합하면 약 150년 전 사람의 체온은 0.45(=0.03×15)℃도 높으므로 36.85℃라는 계산이 나온다. 분데를리히가의 측정치인 37℃에 가까운 값이다. 체온이 줄어든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위생이 개선되면서 염증이 줄어든 것이 꼽힌다. 염증은 체온 상승을 유발하는데, 19세기 이후 전쟁과 부상으로 인한 만성 감염 감소, 치아 위생 개선, 결핵과 말라리아 감염 감소와 더불어 항생제 시대가 시작되며 염증이 줄었다는 것이다. 난방시스템 발달도 체온 감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히터, 에어컨 등을 이용해 실내 온도를 온종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되면서 체온 조절에 들이는 에너지 소비가 줄고, 이에 연구팀은 기초대사량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체온은 기초대사로 생긴 열로 유지되므로, 몸을 덥히는 연료가 부족해졌다는 것이다. 장내 미생물도 체온에 영향 미쳐 그림3. 장내 미생물이 체온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출처: Shutterstock) 지난해 11월에는 미국 미시간대 의과대학 연구팀이 체온 감소를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가설을 제시했다. 바로 장내 미생물 변화다. 장내 미생물은 염증 반응이나 면역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체온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연구팀은 장내 미생물과 체온과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패혈증으로 입원한 환자 116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입원 기간 장내 미생물을 꾸준히 채취하는 한편, 체온을 측정해 상관관계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후벽균(Firmicutes)류 같은 특정 미생물이 체온 상승과 연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동물 실험 결과도 이러한 현상을 뒷받침했다. 연구팀이 패혈증이 걸린 쥐들을 관찰했더니 특정 미생물이 없는 쥐는 체온이 떨어지는 정도가 덜한 것을 알 수 있었고, 장내 미생물 조성이 체온에 영향을 끼친다고 결론지었다. 연구를 이끈 케일 본거스 박사는 “이번 발견은 장내 미생물이 체온을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좋은 증거”라며 “지난 세기 동안의 식단으로 인한 미생물 변화는 사람의 평균 체온 하락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인간의 유전자는 지난 150년 동안 의미 있는 수준으로 변하지 않았지만, 식단, 위생, 그리고 항생제의 변화는 우리의 장내 미생물에 많은 영향을 줬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체온이 떨어지는 건 유익할까? 몸을 따뜻하게 해야 오래 산다는 말이 있지만, 체온을 낮춰야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종종 나온다. 한 예로 지난 2006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연구에서 유전자 조작으로 체온이 0.3~0.5℃ 낮아진 쥐의 수명이 수컷은 12%, 암컷은 20% 연장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의 나이로는 7~8년쯤 된다. 체온이 낮으면 수명이 긴 이유는 앞서 말한 대사량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체온을 1도 높이려면 대사량이 10% 이상 늘어나야 하는데 이를 위해 세포호흡을 통해 포도당과 지방을 더 태워야 한다. 이 과정에서 활성산소를 비롯한 유해 물질이 더 생기고, 결국 세포가 손상돼 노화가 빨라진다. 반대로 지난 2010년 국제학술지 엠바이오에는 높은 체온이 생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가 실렸다. 포유류가 변온동물에 비해 곰팡이에 감염돼 죽는 경우가 드문데, 연구팀은 이것이 동물의 체온이 올라가면 진균의 종류가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글: 김우현 과학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