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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580년 전인 1437년 3월 11일, 조선의 밤하늘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새로운 별이 하나 반짝였다. 그날 세종실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객성(客星)이 처음에 미성(尾星)의 둘째 별과 셋째 별 사이에 나타났는데, 셋째 별에 가깝기가 반 자 간격쯤 되었다. 무릇 14일 동안이나 나타났다.” (세종 19년 2월 5일자) 여기서 객성이란 손님별이란 의미로서,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별을 말한다. 즉, 신성과 초신성, 혜성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해 6월 미국 자연사박물관과 영국 리버풀존무어대학 등이 포함된 6개국 국제공동연구진은 전갈자리에 있는 한 별을 둘러싼 가스구름을 관측했다. 그런데 폭발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되는 별의 위치가 중심에서 약간 벗어나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연구진은 100여 년간의 관측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하버드대학 데이터베이스에서 그 별에 대한 1919~1951년의 관측 기록을 찾아냈다. 그런데 그 위치 역시 자신들이 관측한 위치와 약간 달랐다. 그를 바탕으로 그 별에 대한 1400년대 위치를 추정하자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바로 1437년 세종실록에 기술된 객성과 동일한 별임이 확인된 것이다. 즉, 세종실록 속의 객성은 전갈자리에서 폭발한 신성이었다. 이어서 연구진은 하버드대학의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그 별이 1934년, 1935년, 1942년에 왜소신성 현상을 일으켰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신성이란 별이 폭발함으로써 갑자기 생긴 별처럼 일시적으로 빛이 밝아진 별이다. 다만 신성은 변광성처럼 일시적으로 밝아졌다 다시 어두워지는 것으로, 별이 일생을 마치는 마지막 단계에서 폭발하는 초신성과는 차이가 있다. 사진1. 전갈자리의 가스성운. 출처: NASA 별의 진화 양상 연구에 도움이 된 세종실록 신성과 초신성은 폭발의 양상이 매우 다르다. 신성은 별의 껍질만 폭발하므로 하나의 별에서 여러 차례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그에 비해 초신성은 별의 최후를 알리는 폭발로써 별 자체가 폭발해 사라진다. 또한 ‘왜소신성’이란 폭발 규모가 약해서 신성보다 밝기가 덜한 별을 가리킨다. 이때까지 과학계는 신성 폭발이 일어난 후 다음 폭발이 일어날 때까지 그 별이 어떤 상태로 존재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그 사이에 왜소신성이 수차례 발생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별의 진화 양상을 밝힌 이 연구는 세종실록의 기록이 없었다면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 8월 말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됐다. 한편, 1998년 미국과 호주의 연구팀은 초신성을 이용해 우주의 팽창 속도 변화에 대해 각각 연구하던 중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관측 결과를 얻었다. 바로 우주의 팽창 속도가 점차 가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이는 1929년 에드윈 허블이다. 이후 모든 과학자들은 우주의 팽창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천체끼리 서로 끌어당기는 중력의 효과 때문에 빅뱅으로부터 비롯된 팽창의 효과가 약해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8년에 나온 관측 결과는 우주 팽창 속도가 약 40억 년 전부터 갑자기 가속도가 붙으며 빨라지고 있음을 나타냈다. 이는 곧 암흑물질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질량에 작용하는 중력보다 더 큰 힘이 우주를 밀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과학자들은 그 에너지를 마치 암흑 속에 가린 미지의 에너지라는 의미에서 ‘암흑 에너지’라고 부른다. 그 후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한 결과, 우주 전체의 에너지 중 별과 은하, 행성, 가스 등의 물질은 4%에 불과하며 그 나머지는 암흑에너지 72%, 암흑물질 24%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속 팽창하는 우주’를 발견한 미국과 호주의 연구자들에게는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이 수여됐다. 미국과 호주의 연구자들은 우주의 가속 팽창 현상을 연구할 때 초신성 1a형을 이용하는 새로운 기법을 사용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노벨상 수상자들이 이용한 초신성 1a형의 원형이 이번에는 선조실록의 기록 덕분에 밝혀졌다는 점이다. 사진2. 케플러가 기록한 '케플러 초신성' 출처: wikipedia 선조실록에 실린 초신성 관측 선조실록에는 1604년 10월 13일부터 1605년 4월 23일까지 7개월간 약 130회나 한 객성에 대한 관측 기록이 있다. 그 객성의 정체는 우리은하의 초신성 중 가장 최근에 폭발한 ‘케플러 초신성’이다. 이 초신성에 케플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선조실록과 비슷한 시기에 유럽에서 관측했기 때문이다. 그는 약 1년간 이 초신성을 연구해 저서를 남겼고, 이후 그의 이름이 붙여지게 됐다. 그런데 케플러의 기록만 보면 1604년의 초신성은 1a형인지 2a형인지 확실하지 않다. 1a형 초신성은 비교적 작은 항성이 수소핵융합을 모두 마친 후 태양 질량의 1.4배가 돼 폭발한 경우이며, 2a형 초신성은 태양보다 10배 이상 큰 별이 폭발한 경우다. 2a형은 밝기 곡선이 불규칙적이지만 1a형은 폭발 질량과 밝기가 일정해서 성간 거리 등을 재는 기준으로 사용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선조실록의 기록을 통해 그 초신성이 1a형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당시 유럽은 날씨가 흐려 케플러가 처음 그 별을 관측한 날은 선조실록보다 4일이나 늦었다. 그에 비해 선조실록의 기록은 그 공백을 메워주고 있을 뿐 아니라 전체적인 기록의 정밀도 면에서 훨씬 뛰어났던 것이다. 우리 조상들의 위대한 기록 이처럼 기록의 정밀성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현대의 세계 천문학자들은 케플러 관측기록보다 선조실록을 더 자주 인용한다. 즉, 선조실록의 기록은 초신성 특성을 연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세계적 기록으로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선조실록에 케플러 초신성에 관한 기록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것은 중국의 천문학자들이었다. 그들이 1966년 서울대 규장각에서 찾아냈고, 이후 서구의 천문학자들에게 널리 소개됐다. 그 후로도 국내에서는 외국인이 그 기록을 찾아냈다는 사실조차 모르다가 1997년 미국에서 귀국한 고등과학원 김정욱 원장에 의해 차츰 알려지게 됐다. 일부에서는 조선이 과학기술을 천시하여 일제 강점기의 치욕을 당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런데 신성의 기록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조상들의 기록을 너무 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선은 중세 왕조국가로서는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정밀한 문헌기록을 남긴 국가다. 근대화가 늦었다는 이유로 국권 침탈을 당한 조선을 부끄러워하기보다 선조들이 과학적인 관찰 기록을 남겼음에도 이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우리 자신을 더 부끄러워해야 할지 모르겠다. 글: 이성규 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