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똑똑한 녀석들의 전성시대.’ 현대 사회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다. 온종일 함께하는 스마트 폰부터 스마트 자동차, 스마트 홈, 스마트 공장, 스마트 시티까지 다양한 기기나 환경에 ‘스마트’란 수식어가 붙는다. 우리 삶 속 100억 개가 넘는 기기들이 서로 연결되며 세상이 똑똑해졌다.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덕분이다. 사진 1. 스마트 폰, 전화기, 세탁기 등 우리 생활 속 다양한 기기가 서로 소통하게 됐다. 사물인터넷(IoT) 덕분이다. (출처 : Pixabay) 사물 감(感)잡게 해준 센서 사물인터넷은 최근 몇 년간 과학기술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용어 중 하나다. 전화기, 전등, 냉장고, 자동차, 신호등 등 주위의 모든 것이 인터넷에 연결되며 사람의 개입 없이도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됐다. 전화기로서, 전등으로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알아낸 정보를 인터넷 환경에서 공유하며 상호 작용하는 것이 사물인터넷 세상이다. 사람이 촉각, 시각, 청각, 후각, 미각과 같은 오감으로 세상을 관찰한다면, 사물들은 센서를 통해 감각능력을 얻는다. 센서는 주변 신호나 물리·화학·생물학적 자극을 받아 전기 신호로 변환하는 장치다. 오감의 역할을 하는 만큼 압력센서, 영상센서, 광학센서, 형상인식센서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머지않아 일상에서 쓰이는 센서의 수가 1조 개를 넘어설 것이라는 예측도 있을 정도다. 주목할 점은 전자기기에나 있을 법한 센서들이 이제는 시계나 신발, 안경과 같은 범위까지 응용범위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부착된 사실조차 느낄 수 없도록 소형화한 센서, 인간의 오감을 뛰어넘는 우수한 성능의 고감도 센서 등을 개발하는 일이 사물인터넷이 열 똑똑한 세상을 대비하는 과제로 떠올랐다. 10억 분의 1m 속 작은 세상을 그리는 나노기술이 그 중심에 있다. 센서는 나노라는 반석 위에 지은 집 정도랄까. 사진 2. 사물인터넷의 핵심 기술인 센서에 나노 기술을 접목하면 여러 장점을 얻을 수 있다. 소형화·고감도 센서 제작이 가능한 점이 대표적이다. (출처 : wikimedia) 초소형·고감도 센서의 비결, 나노 센서를 작게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가령 열화상 카메라에 들어가는 적외선센서를 작게 만들면, 빛을 흡수하는 면적이 줄어 감도가 떨어진다. 압력센서가 작아진다면, 외부 변화에 더 민감해져 정확한 측정이 어렵다. 과학자들은 이런 문제를 나노기술을 접목해 해결해 나가고 있다. 우선 나노기술은 센서의 감각을 기존보다 민감하게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다. 박성규 재료연구소 소자기능박막연구실 선임연구원 팀은 나노 구조체의 공명 현상을 이용한 초고감도 분자감지 소재를 개발했다. 연구결과는 2014년 ‘어드밴스드 머터리얼스’ 등 유수의 나노 분야 세계적 학술지에 연이어 실렸다. 연구진은 금, 은을 비롯한 귀금속으로 만든 나노 구조체를 센서에 활용했다. 여기에 특정 파장의 빛을 쪼이면 한꺼번에 진동하는 공명 현상이 일어나며 구조체 사이 빈 공간이 생기고, 전기장의 세기가 급격히 증가한다. 개발한 센서를 미세먼지 측정에 활용한다면 다이옥신과 같은 인체유해성분이 공기 중에 1ppb(10억 분의 1) 수준의 극미량만 있어도 알아낼 수 있다. 센서를 지속적으로 구동하기 위한 전력을 얻는 일에도 나노기술이 힌트를 줬다. 류정호 재료연구소 금속재료연구부 책임연구원은 2016년 전선 주변에 존재하는 미세한 자기장을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국제학술지 ‘에너지 머터리얼스’에 발표했다. 전자기 유도 현상을 이용해 자기장을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키기 위한 코일을 소형화한 게 핵심이다. 개발한 소재는 사물인터넷 센서 네트워크 등을 구동할 수 있는 수준의 전기에너지를 수확할 수 있음이 확인됐다. 한편, 거시세계의 물질이 가진 단점을 나노 구조를 접목해 해결한 사례도 있다. 눈에 착용하는 형태의 ‘스마트 렌즈’는 눈물을 통해 혈당이나 안압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기술이다. 기존 스마트 렌즈는 센서에 사용된 금속 전극이 불투명해 시야를 가린다는 한계가 있었다. 박장웅 울산과학기술원(UNIST) 신소재공학부 교수팀은 금속 나노 와이어와 그래핀을 이용해 투명한 전극을 제작했다. 나노기술 덕분에 완전한 시야를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2017년 4월 27일자에 실렸다. 사진 3. 박장웅 UNIST 교수팀이 개발한 스마트 콘탠트 렌즈의 구조. 나노 기술을 접목해 기술 스마트 렌즈가 시야를 가리는 문제를 해결했다. (출처 : UNIST) 걸음마 뗀 첨단센서 시장, 나노로 키운다 다만 국내 첨단센서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IDC는 2014년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첨단센서에 대한 관심과 정부 투자 모두 높은 수준이지만, 자국 기업에 의한 센서 개발 수준은 낮다”고 평가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역시 ‘연구 성과 활용 부족’을 나노 분야 연구개발(R&D)의 문제점으로 꼽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방편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2018년 정부 R&D 투자방향’에 따라 민간 투자가 활발한 분야의 지원을 최소화하고, 미래성장 잠재력이 기대되는 원천기술 개발을 강화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여기엔 나노 센서, 저전력·소형 나노 소자 등 사물인터넷에 활용 가능한 소자들이 포함된다. 2017년 1월 4일 과기정통부가 개최한 ‘과학기술기반 대학생 아이디어 콘테스트’ 역시 나노기술 개발 활성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 대회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 보유한 나노 기술 10개를 제시하고, 대학생들에게 사업화 아이디어를 찾는 대회다. 대회에서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보유한 나노 구조체 가스센서를 자동차의 핸들에 넣어, 핸들이 운전자의 음주 정도를 판단하게 하자는 아이디어가 대상을 탔다.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시도하면 가스센서가 날숨 속 에탄올 성분을 측정해 경고를 하고, 에탄올 농도가 심하게 높을 경우 차량 시동을 차단하는 시스템이다. 한편,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보유한 영상기반 촉각 센서를 유아용 베개에 넣어, 신생아의 두상 상태를 파악해 공기를 넣거나 빼는 식으로 베개 모양을 변화시키는 기술이 금상을 차지했다. 사진 4.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 ‘과학기술기반 대학생 아이디어 콘테스트’ 금상 수상작인 ‘스마트 짱구 베개.’ (출처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이처럼 지대한 관심 속에 태어난 우수한 연구 성과에 아이디어를 입히면 그간 어려움을 겪던 상용화 전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나노 기술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더해졌을 때 더 똑똑한 세상의 실현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글: 권예슬 동아사이언스 기자/일러스트: 이명현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