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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맛은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맛이다. 단맛을 내는 감미료로는 설탕, 물엿, 꿀, 과당 등이 많이 쓰인다. 그 중에서도 설탕은 거의 모든 가공식품에 사용된다. 요리할 때 첨가할 뿐만 아니라 커피를 마실 때에도 설탕을 타서 먹는다. 이렇듯 설탕으로 대부분의 단맛을 낼 수 있는데 왜 인공감미료를 개발하게 됐을까? 비만이거나 당뇨 등이 있는 사람들은 칼로리가 높은 설탕 대신 칼로리가 없으면서 단맛이 나는 물질을 선호해 왔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개발된 것이 인공감미료다. 인공감미료는 단맛을 내면서도 칼로리를 내지 않는 물질로 가격 또한 설탕의 4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열에 안정적이어서 열을 가해 만드는 음식에도 사용할 수 있어 식품가공업체에서 선호하는 물질이다. 이런 장점으로 인해 인공감미료는 개발된 이후로 꾸준히 사용돼 왔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감미료는 무엇일까? 바로 ‘사카린(saccharine)’이다. 사카린은 1879년 2월, 존스 홉킨스 대학의 화학교수인 아이라 렘슨과 그의 제자 콘스탄틴 팔베르크에 의해 우연히 발견됐다. 팔베르크는 타르에 포함된 화학물질의 산화 반응을 연구하던 중 하루는 실험 후 손을 씻지 않고 빵을 먹다가 단 맛을 느꼈다. 이 단맛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다음날 실험기구를 조사한 그는 단맛을 내는 물질이 사카린이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렘슨과 공동논문으로 발표했다. 당도가 설탕의 300배나 되는 사카린은 칼로리를 내지 않고 우리 몸 밖으로 배출된다는 장점으로 인해 다이어트나 당뇨 식품 등에 널리 사용돼 왔다. 그러다 1977년 캐나다에서 쥐를 대상으로 한 사카린 실험 결과 방광암에 걸린 쥐가 나왔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사카린에 대한 유해성 논란은 절정에 달했고 미국 식품의약청은 즉시 사카린의 사용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미국 법에는 동물이나 인간에게 암을 유발하는 물질은 무조건 식품에 사용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국 식품의약청은 사카린을 계속 사용해야 한다는 청원서를 10만 통, 미국의회는 100만 통이나 받았다. 당시 미국인들이 많이 먹던 다이어트식품에는 사카린이 필수 첨가물이었는데, 사카린 사용을 금지시키면 다이어트식품을 제조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었다. 미국 의회는 하는 수없이 사카린을 계속 사용하되 “이 제품의 사용은 당신의 건강에 해가 될지도 모릅니다. 이 제품은 동물실험 결과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결정된 사카린을 함유하고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을 표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사카린의 무해함을 밝히기 위해 꾸준히 연구를 진행했다. 이들의 노력으로 사카린에 대한 동물실험 조건은 지나치게 고농도로 투여한 비현실적인 조건이었으며, 사람에게는 방광암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결국 미국, 캐나다 등에서 광범위한 실험을 실시한 결과, 정상적인 사용 농도와 사용 방법으로는 인체에 무해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2000년, 미국 의회는 사카린에 대해 경고문을 부착하도록 했던 법안을 철회했으며 그 다음해인 2001년 미국 식품의약청이 사카린을 안전한 물질로 인정했다. 사카린이 안전한 물질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받는데 무려 20여 년이 걸린 것이다. 2010년 12월에는 미국 환경보호청이 사카린을 ‘인간 유해 물질’의 명단에서 제외시켰다. 현재 국제암연구소(IARC), 미국 독성물질 관리 프로그램(NTP) 등에서도 사카린을 발암성 물질이 아니라고 규정짓고 있다. 현재 사카린은 미국, 일본, 유럽연합 등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나라 식품위생법에서는 1973년부터 식빵, 이유식, 백설탕, 포도당, 물엿, 벌꿀, 알사탕 등에 사카린의 사용을 금지하고 그 외의 식품에는 제한 없이 사용토록 허용해 왔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국내 언론에 사카린의 유해론이 보도되기 시작하며 문제가 됐다. 여기에 소비자 단체들도 가세하며 사카린 사용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다. 결국 1990년 4월 보건사회부는 사카린의 사용을 허용된 특정식품에만 사용하도록 했으며 1992년 3월에는 사카린의 허용 식품의 범위를 대폭 축소시켰다. 아이스크림, 껌, 과자류, 간장 등 거의 모든 제품에 사카린의 사용을 금지했으며 절임식품류, 청량음료, 어육가공품 및 특수영양식품에만 사용토록 규제를 강화했다. 그 후로 사용허용범위가 조금 더 확대돼 현재는 젓갈류, 절임식품, 조림식품, 김치류, 음료류, 어육가공품, 영양소보충용 건강기능식품, 특수의료용도, 체중조절용 조제식품, 시리얼류, 뻥튀기 등에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합성감미료인 아스파탐, 아세설팜칼륨, 수크랄로스 등에는 사용제한이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사카린의 사용규제는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의 식품의약청은 2011년 12월 20일 소스 종류, 탁주, 소주, 껌, 잼, 양조간장, 토마토케첩, 조제커피(커피믹스) 등 8개 품목에 대해 사카린을 사용할 수 있도록 ‘식품첨가물의 기준 및 규격 일부개정(안)’을 행정 예고 한 바 있다. 다만 과자, 사탕, 빙과, 빵, 아이스크림 등 어린이 기호식품은 여전히 묶어 놓았다. 사카린을 기준량 이하로 소비하면 인체에 무해하다고 발표해도 소비자단체들은 ‘그것이 곧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합성첨가물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그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이렇듯 합성감미료인 사카린에 대해 무조건 거부 반응을 보이는 소비자들이 여전히 많다. 그들은 ‘사카린 첨가 식품’이라는 것을 소비자들이 알 수 있도록 표시한다 해도 판매용 용기에 담지 않거나 포장하지 않고 판매하는 김치, 반찬류나 길거리 자판기 커피, 대형 용기에 담아 유통되는 막걸리 등에는 사카린이 들어가 있는지 알기 힘들다고 주장한다.사카린의 사용범위를 확대하더라도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카린 첨가 식품’이라는 것을 소비자들이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표시기준(명칭, 함량, 활자크기)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또한 소비자들이 자주 먹는 식품의 경우에는 사카린 섭취량을 정기적으로 조사해 과다 섭취가 우려될 경우, 사카린 허용 품목과 기준을 조정해야 할 것이다. 글 : 이원종 강릉원주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