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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약을 만들어 지구로 가져오는 최초의 ‘우주 약 공장’ 실험이 시작됐다. 미국의 우주 스타트업 ‘바르다 스페이스 인더스트리(Varda Space Industries, 이하 바르다)’는 현지 시각으로 지난 6월 12일, 이 실험을 수행할 위성 ‘더블유-시리즈 1(W-Series 1)’을 스페이스X의 로켓에 실어 지구 저궤도로 보냈다. 바르다의 목표는 미세중력 환경에서 약을 제조하는 것이다. 이번 실험에서는 위성에 실린 무게 약 90kg의 캡슐에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에 쓰이는 항레트로바이러스제 ‘리토나비르’ 결정을 바꾸는 연구가 진행된다. 적은 비용으로 우주를 드나들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바르다 외에도 우주에서 의약품을 연구 및 제조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그림 1. 바르다 스페이스 인더스트리의 위성 W-Series 1. 출처: Varda Space Industries 우주에서 만든 약, 뭐가 다를까? 예전보다 가기 쉬워졌다고는 하지만, 우주는 공기가 희박하고, 우주방사선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이다. 지구 생명체가 활동하기 어려우므로 우주에서의 뭔가를 생산하려면 첨단 기계장치에 의존해야 한다. 비경제적이고, 생산성이 높을 리 없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우주에서 약을 만들려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새로운 약을 만들 때는 단백질 결정화 작업이 핵심인데 지구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나 더 안정적인 단백질 결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미세중력은 중력이 없거나 아주 낮은 상태를 일컫는다. 사람의 경우 미세중력에 오랜 시간 노출되면 근골격계 등에 이상을 겪게 돼 반갑지 않은 환경이지만, 약을 제조하기에는 천혜의 환경이다. 고순도 물질이나 결정을 만들 때 중력의 영향을 덜 받으면 밀도 차이로 인한 대류, 침강 등의 현상이 생기지 않는다. 미세중력 환경에서 약을 만들면 고순도 단백질 결정을 얻을 수 있어 효능이 높아진다. 이러한 이유로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는 수많은 의약품 연구가 진행됐다. 대표적으로 미국 제약사 머크(Merck)는 2017년부터 면역항암제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를 우주에서 제조하는 방법을 연구해왔다. 머크는 ISS에서 수행한 연구를 통해 키트루다를 우주에서 만들면 현재 쓰이는 정맥주사 방식보다 쉽게 투여할 수 있는 약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림 2. 미국 바이오 스타트업 ‘마이크로퀸’이 개발한 치료 약물이 유방암 세포를 사멸 시키는 과정. 초록색은 치료 약물, 파란색은 세포핵이다. 출처: NASA 미국 생명공학 기업 마이크로퀸(MicroQuin) 역시 지난 2018년부터 ISS에서 새로운 난소암, 유방암 치료 후보물질을 연구 중이다. 마이크로퀸은 암세포 내 단백질 ‘TMBIM6’를 조절해 암세포 사멸을 유도하거나 확산을 막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스콧 로빈슨 마이크로퀸 최고경영자는 “시험관 속의 암세포는 단층이지만, 실제 걸리는 암은 3차원”이라며 “미세중력 환경에서는 암세포가 산소와 영양분을 얻는 과정의 3차원 모델을 얻을 수 있다”고 장점을 밝혔다. 또 올해 4월에는 스위스 우주 스타트업 ‘스페이스파마(SpacePharma)’의 미니실험실이 ISS로 향했다. 신발 상자 크기의 미니실험실에서는 사람 피부 세포를 이용해 우주여행이 피부 세포 및 조직 배양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우주에서 만든 약’, ‘우주 약 공장’ 등 새로운 산업 등장 윌 브루이(Will Bruey) 바르다 최고경영자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우주 약 공장’ 실험에 대해 “(성공 확률은) 90% 미만이지만, 동전 던지기보다는 나을 것”이라며 “(우주에서의) 제조업은 차세대 거대산업”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우주에서 약을 만드는 산업 외에 다양한 관련 산업이 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제약회사 보령이 지난해 우주 헬스케어 아이템 경진대회를 열며 우주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미래에 화성 등으로 관광하는 시대를 대비해 미세중력과 우주방사선 등에서 인체에 생기는 문제를 찾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다. 그림 3. 보령은 우주 헬스케어 분야 개척에 나서기 위해 미국 우주기업 액시엄스페이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우주연구기관 SEI와 함께 ‘휴먼즈 인 스페이스(HIS)’ 프로그램을 출범한다고 밝힌 바가 있다. 출처: 보령제약 또 독일 스타트업 ‘아트모스 스페이스 카고(ATMOS Space Cargo, 이하 아트모스)’는 우주에서 지구로 화물을 운송하는 캡슐 개발에 힘쓰고 있다. 우주에서 만든 약이나 연구 결과물을 지구로 다시 안전하게 가지고 오는 역할을 하기 위함이다. 아트모스의 캡슐은 약 100kg의 화물을 실을 수 있고, 우주에서 각종 실험이나 제조를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총 3시간~3개월 궤도를 돌다가 지구로 복귀하며 지구 대기권을 뚫고 안전하게 회수될 수 있도록 열 차폐 장치와 낙하산도 탑재했다. 지난 2019년에는 이스라엘 스타트업 '알레프 팜스(Aleph Farms)'가 ISS에서 소의 세포를 3D 프린터로 인쇄해 스테이크를 만들어내는 실험을 수행했다. 우주에서 자급자족하기 위해 식량을 만들어내는 연구다. 세포를 채취해 우주에서 배양하고, 이런 세포와 성장 인자를 혼합해 바이오 잉크로 제작한 후 인쇄해 실제 고기의 질감, 풍미를 지닌 육류 대체품을 생산해냈다. 이렇게 우주 시대에 대비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바르다의 캡슐을 담은 위성은 계획대로라면 이달(7월) 중순 지구로 귀환할 예정이다. 지구에 없는 새로운 약이 캡슐 속에 타고 있을지 기대해 보자. 글: 김우현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