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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에 식물을 심거나 텃밭을 조성하는 ‘지붕 녹화’ 사업이 유행이다. 여름철 실내 온도를 낮추고 대기오염을 줄이며 유기농 채소를 직접 길러 먹을 수 있다는 이점 덕분이다. 국가와 지자체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곳곳에 옥상 정원과 옥상 텃밭이 조성되고 있다. 그러나 지붕 녹화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뜨거운 햇볕 △지속적인 물 공급 △온화한 겨울 등이다. 첫째로,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햇볕이 강렬하고 기온이 높은 지역일수록 냉방 효과가 높아진다. 둘째로, 정기적으로 물을 공급하는 관개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필수다. 지붕 토양이 마르면 식물이 증발산 효과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로, 겨울 기온이 너무 낮으면 열 차단 효과가 덜하다. 녹화된 지붕은 여름철 실내 온도를 낮추지만 건물 내 열기를 보존해야 하는 겨울철에는 식물이 활동하지 못해 오히려 외벽의 온도를 낮춘다. 우리나라에 적용하려면 겨울철 식물과 토양 관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다. 스페인 바스크족 자치구에 위치한 파이스바스코대학교(Universidad del Pais Vasco) 연구진은 일반 지붕과 텃밭을 조성한 지붕 간의 비교 실험을 통해 이같은 결론을 얻었다. 더워지는 여름, 지붕 녹화로 해결한다 여름이 점점 더워지고 있다. 지난달 전국 평균기온은 27.3도에 달해 1973년 관측 이래 40년 만에 가장 높은 온도로 기록됐다. 6월부터 8월까지의 여름 평균기온도 25.4도로 평년의 23.6도보다 1.8도나 높았다. 에어컨 등 전기를 이용하는 냉방장치의 가동도 급증했다. 그러나 전력 부족 위기로 인해 건물 내부의 온도를 사기업은 26도, 공공기관은 28도 이상으로 제한하면서 국민들은 유난히 더운 여름을 보내야 했다. 뜨거운 열기의 유입을 막고 냉방효과를 높이려는 갖가지 아이디어도 속속 등장했다. 창문에는 차광막을 설치하거나 유색 필름을 붙여 햇볕을 차단하고 건물 상층부는 창문을 열어 열기를 배출하고 공기를 순환시키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효과가 높다고 알려진 것은 ‘지붕 녹화’다. 태양열에 직접 노출된 옥상에 토양층을 구비하고 식물을 심어 온도를 낮추는 해결책이다. 올해 초 진행된 서울대학교 빗물연구센터는 건물 옥상에 총 840제곱미터의 텃밭 ‘마이가든’을 조성해 냉방 효과 여부를 직접 실험했다. 여름 한낮에 콘크리트 옥상의 표면 온도는 50도까지 치솟았지만 텃밭을 가꾼 곳은 24도로 낮아 총 26도의 온도 변화를 일으켰다. 이로 인해 건물 내부는 3~4도 가량 낮아진다. 마이가든은 정원의 가장자리를 높이고 가운데를 낮추어 빗물을 쉽게 모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국내 최초의 오목형 구조로 총 170톤의 빗물을 저장할 수 있다. 이후 청소나 조경에 사용함으로써 수도요금을 절약할 수 있다. 옥상에서 지상으로 18미터를 떨어뜨려 낙차 에너지를 이용한 전력 생산도 연구중이다. 우리나라보다 여름 햇볕이 뜨거운 스페인도 지붕 녹화에 관심이 많다. 수도 마드리드는 중부에 위치해 있어 유럽 여느 지역처럼 온화한 기후를 보이지만 동부 도시 바르셀로나 인근과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은 한여름 기온이 35도를 넘나들고 체감온도는 40도를 웃돈다. 북부 대서양 해안지역도 여름 기온이 높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그러하듯 에어컨 시스템을 갖추지 않고 건물의 벽을 두껍게 하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이 때문에 예상치 못한 폭염이 닥치면 사망자가 속출하기도 한다. 지붕 녹화를 통해 실내 온도를 낮춰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 옥상 정원을 조성하면 어느 정도의 냉방 효과가 있을까. 나무, 꽃, 채소 등을 심기만 하면 될까. 스페인 북부 바스크족 자치구에 위치한 파이스바스쿠대학교는 실험을 통해 지붕 녹화의 효과와 조건을 검증하기로 했다. 조립식 주택 건설회사의 요구에 따라 지붕 조성에 따라 에너지 효율이 달라지는지를 비교하는 실험이다. 우선 건물 옥상에 가로 6.6미터, 세로 3.3미터, 높이 3미터의 토양층을 조성했다. 8층 이상 높이의 건물에 적용될 수 있는 규모다. 그 옆에는 자갈을 깔고 삼각지붕을 얹은 기존의 일반적인 지붕을 만들어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열기와 한기를 번갈아 주입하면서 극한의 기상 조건을 만들어 경과를 지켜봤다. 에너지 효율은 파스링크(PASLINK) 방식으로 계산했다. 1985년 시작된 유럽의 패시스(PASSYS) 프로젝트 때부터 사용된 계산법이다. 자연 태양광을 채광과 난방에 이용할 수 있도록 건설된 패시브(passive) 방식의 벽체와 건물이 얼마의 에너지를 소모하는지 알아낼 때 쓰인다. 지붕 녹화 핵심은 ‘뜨거운 햇볕’과 ‘지속적인 물 공급’ 실험 결과, 지붕 녹화로 현실적인 수준의 냉난방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뜨거운 햇볕 △지속적인 물 공급 △온화한 겨울 등 3가지 조건이 필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두 번째 조건이 가장 중요하다. 관개 시스템을 갖추어 물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옥상 정원에 심어진 식물이 뿌리로 물을 흡수하고 잎으로 증발산을 시키는 과정에서 열 차단 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집으로 들어올 태양 에너지를 식물의 광합성과 증발산 작용에 쓰이도록 우회시키는 전략이다. 이렇게 차단되는 태양 에너지의 양은 최대 75퍼센트에 달한다. 그만큼 인위적인 냉방 시스템에 사용되는 전기를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정기적으로 물을 주지 않는다면 일주일만에 옥상 정원의 토양이 바싹 마르고 식물이 죽어 지붕 녹화도 무용지물이 된다. 게다가 물기가 없는 토양으로 덮힌 지붕은 일반 지붕보다 높은 열이 발생한다. 옥상 정원을 조성했어도 물을 주지 않으면 냉방에 드는 전기 사용량이 65퍼센트 이상 증가한다. 그러므로 지붕 녹화를 진행할 때는 절감되는 전기료 이외에 지속적으로 물을 공급하는 비용을 추가해야 한다. 수도요금이 비싼 지역에서는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세 번째 조건은 겨울 기온이 극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냉방이 아닌 난방 효과에 적용된다. 겨울에는 건물 내부의 열이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해야 난방비가 덜 든다. 그러나 겨울철 기온이 너무 낮으면 식물이 죽거나 활동이 줄어들어 토양 상태가 건강하지 못하다. 조금만 비가 와도 질척거리는 진흙으로 변하기 쉽다. 진흙은 일반 토양보다 열 전도율이 높아 건물의 외벽 온도를 낮춘다. 열 손실이 높아지니 난방비가 더 들 수밖에 없다. 실험을 진행한 아이토르 에르코레카(Aitor Erkoreka) 연구원은 “겨울철에도 식물이 살아 있을 정도로 온화하거나 강수량이 적은 지역에만 지붕 녹화를 추천한다”며 “위 3가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지붕 녹화 대신에 단열재를 1~2센티미터 더 두껍게 시공하는 편이 낫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