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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우리는 앨범과 비디오테이프, LP레코드 등에 데이터를 담았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로 넘어 가며 사진과 영상, 데이터 등을 저장하고 보관하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 우선 컴퓨터 하드디스크 가격이 내려가면서 수 테라 규모의 데이터를 집에서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과 영상을 클라우드 저장소에 올려 간편하고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 데이터를 내 손이 닿지 않는 클라우드에 두는 것이 불안할 수 있으나, 대부분 사람에게는 전문 기업이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클라우드 서비스가 더 안전한 선택이다. 그림 1. 인터넷으로 연결된 초대형 고성능 컴퓨터에 각종 자료를 저장하는 것을 클라우드 서비스라고 한다. ⓒShutterstock 구름 위 나의 데이터, 과연 안전할까? 우리는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네이버 등이 구축한 거대한 데이터센터에 정보를 저장한다. 어제 저녁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음식 사진부터 산책 중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적은 메모까지 거의 모든 것이 데이터센터에 보관된다. 하지만 클라우드 서비스에 저장도 데이터의 안정성을 보장하긴 어렵다. 사용자 정보가 보관된 데이터센터의 하드디스크 역시 수명과 안정성이라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드디스크는 자기장의 극성 변화에 따라 일어나는 자기 배열 상태를 비트로 삼아 정보를 저장한다. 정밀 모터 기술 등이 필요해 만들기 까다롭고, 속도도 느리며 고장이 잘 난다. 요즘에는 보다 빠르고 안정적인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를 많이 쓰지만, 과거에는 하드디스크 고장이나 오류로 데이터를 날리는 일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 데이터센터에서는 자기 테이프를 이용한 저장장치도 여전히 많이 쓰이고 있다. 데이터센터에서는 일정 주기를 두고 하드디스크 등 저장장치를 교체하며 사용자 데이터를 백업한다. 이 같은 관리 및 교체 비용, 저장장치 운영에 소모되는 전력 등은 IT 산업에 큰 비용 부담을 안긴다. 1만 년도 끄덕 없는 데이터 저장 기술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저장매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투명한 고순도 석영 유리 안에 데이터를 새겨 넣어 1만년 이상 손실 없이 저장할 수 있는 ‘프로젝트 실리카(Project Silica)’이다. 컵 받침 정도 크기의 얇은 유리 판에 영화 3,500편 분량인 7테라바이트의 데이터를 저장해 보관할 수 있다고 지난해 말 논문을 통해 밝혔다. 앞서 2019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워너브라더스와 협력, 7.5 x 7.5 x 2(mm) 크기의 유리판에 1978년 영화 ‘슈퍼맨’을 저장한 바 있다. 이는 75.6GB의 데이터에 해당하는 분량으로,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1000년 간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5년 간 추가 연구를 계속하며 저장 용량과 수명을 크게 늘인 것이다. 그림 2. 마이크로소프트는 얇은 유리판에 7테라바이트 규모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Jonathan Banks/Microsoft 프로젝트 실리카는 아주 짧은 시간에 강력한 에너지를 내는 펨토초 레이저로 유리판 안에 나노 단위의 3차원 격자를 층층이 새겨 데이터를 보관한다. (펨토초는 10의 마이너스 15제곱, 즉 1,000조 분의 1초이다.) 2차원 디스플레이를 구성하는 최저 단위인 픽셀에 견주어 이를 ‘복셀(voxel)’이라 한다. 복셀이 지향하는 방향에 따라 비트를 구분해 정보를 저장한다. 기판 안에 저장된 정보는 긁혀도, 고온이나 강한 전자파에 노출되어도 손상되지 않는다. 저장된 정보는 컴퓨터가 조정하는 정밀 현미경이 읽어들이고, 인공지능(AI)을 이용하여 해독한다. 정보가 저장된 유리 기판은 평소에는 마치 도서관의 책들처럼 차곡차곡 꽂혀 있다가, 필요한 경우 로봇이 접근해 원하는 정보가 담긴 기판을 골라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정보를 기판에 새기고 읽는 기술뿐 아니라, 정보가 저장된 기판을 보관하고 필요한 경우 꺼내 쓸 수 있는 보존 및 로봇 운영 시스템까지 개발했다. 그림 3. 프로젝트 실리카 보존 및 로봇 운영 시스템. ⓒMicrosoft 지속가능한 데이터센터를 향하여 프로젝트 실리카는 짧게는 수년에서 길어야 수십 년 정도인 현재 디지털 데이터 저장 수단의 한계를 넘어 정보 보존 기간을 획기적으로 늘일 수 있다. 정보를 기판에 새기거나 읽어 들이는 과정은 복잡하지만, 정보가 새겨진 후에는 전기도 필요 없고 복잡한 보관 조건을 맞출 필요도 없어 관리 비용이 크게 낮아진다. 자기 저장 매체에 주로 의존하는 현재 데이터센터는 수년 단위로 보전 매체를 교체해야 하며 전력 소모도 크고, 발열이 심하다는 문제가 있다. 발열을 잡기 위해 바다 속에 데이터센터를 짓는 시도가 이뤄질 정도이다. 반면 프로젝트 실리카가 상용화되면 방대한 데이터를 유리 기판에 새겨 적은 공간에 에너지 소모 없이 쌓아 둘 수 있다. 초거대 AI 모델의 확산 등으로 클라우드 서비스의 규모가 빠르게 커져가는 추세인 만큼,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대용량 저장 기술의 수요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선행 연구부서 마이크로소프 리서치가 연구하는 프로젝트 실리카는 같은 회사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 사업부와 협력을 통해 앞으로 자체 데이터센터에 적용될 계획이다. 또 엘라이어(Elire)라는 벤처캐피탈 회사는 프로젝트 실리카 기술을 활용해, 인류의 음악 문화 유산을 저장하여 보존하는 ‘세계 음악 보관소(Global Music Vault)’를 노르웨이 최북단 스발바르 지역에 만들 예정이다. 이곳은 세계 작물의 씨앗을 보관하는 국제 종자 보관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이 기술이 상용화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진은 앞으로도 3-4 단계의 기술적 발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으로는 1만 년은 인간이 상상하기에는 너무 먼 미래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여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것이 불과 5,000년 전이다. 유리 기판은 손상 없이 남더라도 저장된 정보를 읽을 현미경이나 AI, 기판을 나를 로봇은 남아있을 수 있을까? 글: 한세희 과학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