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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기술의 불모지였던 한국은 현재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4위의 나노기술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다양한 나노기술 분야에서 매년 수많은 연구 성과가 쏟아지고 시장을 선도하는 영역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나노기술 연구는 언제, 어떻게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현재 어떤 성과들이 나오고 있을까. 한국의 나노기술 연구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자.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의 나노기술 연구 한국의 나노기술 연구는 기술개발 초기 단계에서부터 정부 주도의 체계적인 연구개발 전략수립 하에 추진되었다. 2001년 ‘제1기 나노기술종합발전계획’을 시작으로 제도화된 나노기술 정책은 현재 국가의 중요 연구과제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2001년 당시 미국 세계기술평가센터(WTEC)의 각국 나노기술 수준 평가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나노기술 연구개발 능력은 선진국의 25% 수준에 불과했다. 이에 정부는 제1기 나노기술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하고 나노기술 개발 목적의 주요 인프라 구축(5년 이내), 2010년 선진 5개국 기술경쟁력 확보를 비전으로 제시했다. SCI 논문, 특허 건수, 연구 인력, 인프라 등을 다양한 분야를 종합한 한국 나노기술 수준은 1기 계획의 추진으로 2005년 선진국의 66%에 이르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 정부는 나노기술개발촉진법에 따라 5년마다 성과를 점검하고 새로운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현재는 2기, 3기에 이어 2016년의 ‘제4기 나노기술종합발전계획’에 따라 나노기술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제1기, 제2기에는 연구기반을 구축하고 기술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면, 2010년 이후에는 전자산업 분야 등에서 나노기술이 본격적으로 활용되는 가운데 기술 산업화와 안전성 확립에 많은 관심과 지원을 쏟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정부는 2008년부터 매 5년마다 향후 10년의 나노기술 로드맵인 ‘국가나노기술지도’를 수립해 왔다. 국가나노기술지도에서는 나노기술을 나노소자, 나노에너지·환경, 나노바이오, 나노소재, 나노공정·측정·장비, 나노안전성의 6대 분야로 나누고 해당 기술의 발전 전망에 따른 개발 방향을 제시한다. 2018년에 발표된 제3기 국가나노기술지도에서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으로 대표되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배경으로 무한 청정에너지, 미세먼지 제거, 안전한 식품 기술 등 다가올 미래에 필요할 상세 나노기술 로드맵을 마련했다. 이 덕분에 국가나노기술지도는 연구자들에게는 나노분야 기술개발 방향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고, 기업에게는 기술동향을 파악해 사업화할 수 있는 지침서로 활용되고 있다. 그림 1. 나노 분야 정부 지원 현형과 나노기술 발전 전망을 정리한 표. (출처: 전자신문) 매년 쏟아지는 국내 나노기술 연구 성과 2001년 한국의 나노기술 분야 SCI 논문 건수는 1,334건으로 전 세계 8위에 불과했으나, 나노기술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과 연구개발 활성화에 힘입어 2018년에는 4위(9,457건)로 상승했다. 매년 나노기술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연구 성과들이 발표되고 있는 가운데, 여기서는 최근의 연구성과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2018년 송석호 한양대 물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모든 광통신 주파수 대역에서 작동이 가능한 광다이오드 소자를 개발해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레이저를 이용한 광학 집게 방식을 이용해 열린-양자역학계에서의 비대칭적 에너지 흐름(광신호가 한쪽 방향으로는 손실이 없이 잘 전달되지만 반대 방향으로는 잘 전달되지 못하는 현상으로 광신호 흐름의 공간·시간 대칭성이 없어짐)을 광소자 기술에 도입했다. 이는 일부 좁은 대역의 주파수만 사용하는 일반 광통신 소자와 달리 주파수 대역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로 기대된다. 나노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을 융합해, 차세대 광컴퓨터 및 신경회로망 구성에 핵심이 되는 나노광소자 기술을 실용화 단계까지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림 2. 광-다이오드 구조도. 실리콘 광조파로를 따라 광 신호가 순방향 및 역방향으로 전달되고 있다. (출처: 한양대) 나노에너지·환경 분야에서는 ‘페로브스카이트 전지’ 연구가 활발하다. 페로브스카이트는 부도체·반도체·도체의 성질은 물론 초전도 현상까지 갖는 산화물이다. 페로브스카이트를 광 흡수층으로 사용하는 태양전지는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에 비해 효율이 높아 차세대 태양전지로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 연구팀이 페로브스카이트 전지의 효율을 높이고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는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8월 한국화학연구원 서장원 책임연구원팀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모운지 바웬디 교수의 공동 연구팀은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효율을 25.2%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가 이론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최고 기록인 25% 효율을 뛰어넘는 결과로 의미가 크다. 전 세계 페브로스카이트 태양전지 연구를 이끌고 있는 연구팀은 지난 3월 페로브스카이트에 박막을 입혀 효율을 높이고, 크고 안정적인 태양전지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네이처에 발표하기도 했다. 올해 7월 김선정 한양대 교수 연구팀은 미국 텍사스대 등과 함께 인체근육보다 최대 40배의 힘을 내는 새로운 인공근육을 개발해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탄소나노튜브와 나일론 및 실크 등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상업용 실을 이용해 인공근육을 제작했다. 탄소나노튜브만으로 제작했을 때보다 가격이 저렴해 상업적으로 이용 가치가 크다. 연구팀이 제작한 인공근육은 웨어러블 기기뿐만 아니라 포도당에 반응하는 하이드로겔을 적용하면 생체 내 혈당농도에 따른 약물 방출 시스템으로도 응용이 가능할 전망이다. 그림 3. 인공근육 논문이 실린 지 표지. (출처: Sciecne) 사업화에 성공한 나노기술들 나노기술 관련 연구 성과들은 실제 사업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다양한 기술분야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나노기술 핵심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기술의 사업화를 촉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2017년 기준, 국내 나노기술 분야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기술이전 건수는 총 472건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2년부터 ‘나노융합2020사업’을 통해 공공부문이 보유한 나노기술의 성과를 산업계의 신제품 아이디어와 연결해 조기에 사업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사업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크루셜텍은 모바일폰 지문인식 모듈 사업화에 성공했다. 이 기술은 전자부품연구원, 연세대 등의 연구기관이 세계 최초로 나노패키징 공법을 적용해 개발한 초박막 BTP 지문인식 모듈이다. 기존 지문인식 시스템보다 인식 정확도가 높고 속도가 빠르며, 감도도 향상됐다. 또 해외 경쟁제품 가격의 60%로 중국 화웨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LG전자 등 16개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의 42개 모델 제품에 모듈을 공급하며 3,724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엘켐텍은 고효율 나노다공성 수소발생 전극을 상용화해 25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최근 ‘수소경제’에 큰 관심이 쏠리면서 물을 전기분해하는 수소 발생기의 수소제조 효율이 매우 중요한 기술로 주목 받고 있다. 부산대학교와 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 등이 함께 참여해 개발한 수소발생 장치는 나노다공구조 물 분해 전극을 이용해 수소 발생 효율을 90% 이상끌어 올린 청정에너지 발생 시스템이다. 순수한 물과 전기만을 이용하고 별도의 장치 없이 고순도 수소제조가 가능하다. 이외에도 엔젯은 한국화학연구원과 함께 은나노 잉크를 활용한 대면적 투명전극 제품을 개발해 국산화에 성공했고, ㈜익성에서는 전자 차폐 효율이 뛰어난 초극세사 은나노 흡음 소재를 제조했다. 에스엠에스㈜는 높은 굴절률을 가진 나노소재를 프리즘 필름 코팅에 적용해 초고화질 텔레비전의 화질을 개선하는 제품을 개발해 사업화에 성공했다. 나노융합2020사업을 통해 총 29개의 기업이 기술 상용화에 성공했고, 참여 기업들은 총 5천억 원을 넘는 매출을 올렸다. 이뿐만 아니라 나노 상용화를 위한 정부의 노력은 각종 특허 출원,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앞으로 이 사업이 더 발전하고 확대돼 연구 성과와 산업계를 연결하고, 한국의 나노기술이 더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를 기대해 본다. 글: 오혜진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지원: 국가나노기술정책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