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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2일 천문 분야 국제학술지 ‘천체물리학저널’에 호주 머치슨천문대에 설치된 전파망원경 ‘호주 스퀘어 킬로미터 어레이 패스파인더(ASKAP)’가 포착한 전파에 관한 연구가 실렸다. 우리 은하 중심부에서 발생한 이 전파는 지금까지 관측했던 어떤 전파의 패턴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타라 머피 호주 시드니대학교 물리학부 교수가 이끄는 공동연구팀은 이 전파원을 ‘ASKAP J173608.2-321635’라고 명명하고 후속 연구를 통해 전파원의 정체를 밝힐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림 1. 호주 연구팀이 은하수 중심부에서 그동안의 어떤 전파와도 일치하지 않는 정체 모를 전파(ASKAP J173608.2-321635)를 포착했다. (출처: Sebastian Zentilomo/The University of Sydney) 1930년대 미국의 물리학자 칼 잰스키가 최초로 우주의 전파를 수신한 이후 그동안 과학자들은 수많은 전파를 포착해 왔다. 이중에는 새로운 발견을 이끈 전파원도 있지만, 여태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것도 있다. 우주에서 온 기묘한 전파들은 새로운 종류의 천체일까, 아니면 일부 과학자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외계인이 보낸 신호일까? 지금까지 인류가 포착한 대표적인 전파를 살펴보자. 노벨상을 안긴 ‘펄서’의 전파 우주에서 온 전파를 분석해 이뤄낸 업적 중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펄서’의 발견일 것이다. 펄서는 1967년 8월 6일, 영국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무라드 전파천문대(MRAO)에서 처음 포착됐다. 당시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생이었던 조슬린 벨 버넬은 전파망원경을 이용해 전파를 관측하던 중 여우 자리 방향에서 약 1.337초 간격으로 수신되는 특이한 전파를 포착했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전파는 발생 주기가 없는 반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전파는 주기성을 갖는다. 이 때문에 버넬은 이 전파가 외계인이 의도적으로 만든 신호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LGM-1(Little Green Man1)’이라는 별명을 붙여 지도교수인 앙토니 휴이시와 함께 1968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연구결과를 실었다. 1968년 말까지 비슷한 특징을 가진 전파가 포착되고 연구되면서 전파의 정체가 빠르게 자전하며 회전축 방향으로 전자기파를 뿜어내는 중성자별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과학자들은 이 중성자별에 ‘맥박처럼 신호를 보내는 별(Pulsating Radio Star, Pulsar)’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휴이시 교수는 펄서를 발견한 공로로 1974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당시 펄서의 전파를 처음 포착한 버넬은 수상자에서 제외돼 논란이 됐는데, 이 사건은 노벨상 역사에서 여전히 ‘실수’로 회자되고 있다. 그림 2. 펄서를 나타낸 그림. 펄서는 빠르게 자전하며 전자기파(직선)를 내뿜는 중성자별(가운데)이다. 주변의 곡선은 자기장을 나타낸다. (출처: Shutterstock) 펄서는 또 다른 노벨상 수상에도 공헌했다. 1974년 미국의 천문학자인 조지프 타일러와 러셀 헐스가 푸에르토리코 아레시보 남쪽에 있는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을 이용해 서로의 주변을 도는 한 쌍의 중성자별 ‘쌍성 펄서(PSR B1913+16, PSR J1915+1606)’를 최초로 관측했다. 이들은 두 중성자별이 서로를 공전하면서 속도를 높이다가 점차 에너지를 잃고 공전주기가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 감소율은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통해 예측한 쌍성 운동의 중력파 방출 값과 일치했기 때문에 중력파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증명한 셈이 됐다. 타일러와 헐스는 이 공로로 199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와우!’ 신호와 고속전파폭발 펄서와 다르게 여전히 출처가 오리무중인 전파도 있다. 독특한 이름으로 유명한 ‘와우!신호(wow! signal)’가 대표적이다. 와우!신호는 1977년 8월 15일, 미국 오하이오주대학교에 있는 빅이어 전파망원경에 잡혔다. 당시 와우!신호가 적힌 인쇄물을 본 제리 에먼 당시 오하이오주립대 교수가 출력물에 wow!라는 코멘트를 적어 ‘와우!신호’라는 이름이 붙었다. 와우!신호는 약 72초 동안 지속됐는데. 파장이 균일하고 단일 주파수 대역에서만 관찰됐다. 하지만 이후 와우!신호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궁수자리 방향에서 왔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현재까지 출처를 찾지 못했다. 이 때문에 외계인이 보낸 전파였다는 추측과 함께 아직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그림 3. 제리 에먼 교수가 분석하던 당시 컴퓨터 로그 종이. 그는 로그를 분석하던 중 특이한 신호를 발견하고 WOW!라고 적었는데, 이 일화로 이 신호는 ‘와우!신호’라고 불리게 되었다. (출처: 위키미디어) 2017년 7월 1일에는 영국 행성과학센터 소속 연구원인 안토니오 패리스가 천문 분야 학술지 ‘워싱턴과학학회저널’에 와우!신호의 정체가 당시 옆을 지나가던 두 혜성이 보낸 것이라는 내용의 연구를 실었다. 패리스는 함께 움직이는 깁스 혜성(P/2008 Y2)과 크리스텐센 혜성(266/P)의 긴 수소 가스 꼬리에서 와우!신호와 비슷한 주파수와 전파를 낸다는 사실을 밝혔다. 혜성은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같은 장소에서 신호를 다시 포착하지 못한 이유도 설명할 수 있었지만, 과학자들은 아직 와우!신호의 정체가 혜성이라고 단정하지는 않았다. 2007년 처음 감지된 고속전파폭발(Fast Radio Burst, FRB)이라 불리는 전파원은 최근에 정체가 밝혀졌다. 고속전파폭발은 우주 전역에서 포착되는, 강렬하지만 약 1밀리 초 동안에만 나타나는 전파다. 고속전파폭발이 단 몇 밀리 초 동안 내뿜는 에너지양은 태양이 3일 동안 만들어내는 에너지와 비슷해 발견 당시 과학계 이슈로 떠올랐다. 고속전파폭발은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약 100여 개 정도만 감지돼 정체를 밝히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2017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차임천문대에 건조된 전파망원경이 500개가 넘는 고속전파폭발 전파를 포착하면서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림 4. 고속전파폭발 ‘FRB 181112’이 다른 은하에서 지구까지 도달하는 경로를 그린 이미지. (출처: ESO/M. Kornmesser) 2020년 11월 5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는 캐나다, 미국, 중국 등 복수의 연구팀이 2020년 4월 28일 관측된 고속전파폭발(FRB 200428)이 우리 은하에 있는 중성자별 ‘마그네타'에서 기원했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마그네타는 초신성 폭발 후 남은 잔재들이 뭉쳐 만들어진 고밀도의 중성자별로, X선과 감마선을 방출한다. 세 연구팀은 각자 다른 전파망원경으로 관찰한 결과 우리 은하에 있는 마그네타 SGR 1935+2154에서 고속전파폭발이 발생한 것을 관측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호주 연구팀이 포착한 전파는 펄서나 고속전파폭발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전파원은 몇 주에 걸쳐 나타났다가 몇 주 동안 사라지고, 고속전파폭발처럼 X선을 방출하지 않는다. 현재 과학자들은 이 전파가 은하중심의 일시적 폭발(Galactic Center Radio Transient, GCRT)로 인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은하중심의 일시적 폭발은 은하 중심부에서 몇 시간 동안 아주 밝게 빛났다가 빠르게 사라지는 미확인 전파로. 지금까지 단 3번 감지됐다. X선을 동반하지 않고 밝기가 비슷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지속 시간이 다르다는 차이점이 있다. 연구팀은 또한 전파의 진동이 일정하지 않고 원편광 형태인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자기화됐을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다. 우주에서 오는 미스터리한 전파들의 정체는 무엇이고 왜 사라졌을까? 이 전파가 새로운 천체의 발견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외계인이 보낸 신호로 밝혀질지 지켜보자. 글: 김우현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