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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화장품 산업의 가치는 2017년 5천억 달러를 넘어섰고, 2023년까지 시장 가치가 8천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오늘날 화장은 패션이나 외모와 경제적 지위 등을 나타내는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화장은 주로 여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오늘날 많은 남성들도 화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화장 산업이 어디에서 어떻게 유래했는가에 관한 고고학적 연구는 많지 않다. 화장품의 사용에 대해서는 기원전 221년쯤 고대 중국에서 그 흔적을 찾는 연구들이 있었지만, 과학적 근거를 사용하기보다는 역사적 기록을 근거로 한 것들이었다. 최근 학술지 ‘고고 연대 측정(Archeometry)’에 발표된 논문은, 기원전 700-640년경 춘추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산시성 리우지아와 유적지의 무덤 발굴 과정에서 관 근처에서 발견된 보존 상태가 매우 좋은 청동 단지 속의 내용물을 분석하고 ‘소의 지방’과 석회 동굴에서 자라는 ‘종유석을 갈아 만든 가루’를 섞어 만든 화장용 얼굴 크림이었다고 보고 했다. 이 무덤은 청동기 무기와 함께 묻힌 귀족 남성의 것으로, 그 남성이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화장품이 부장품으로 발견된 것이었다. 이번에 발견된 청동 단지와 비슷한 형태를 한 같은 시대의 유물들은 대개 화장품을 담는 데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해왔다. 보통은 남은 단지 안에서 남아있는 물질을 탐지해 분석할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 발견된 단지 안에는 노르스름한 흰색 덩어리가 남아 있었고, 연구진이 그것의 화학적 성분을 분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분석 결과 청동 단지 안의 물질이 소의 지방과 종유석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가루의 혼합물인 것으로 나타나자 연구진은 이것을 얼굴에 바르는 크림으로 사용된 화장품이었던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더불어, 소의 지방은 피부 결을 정돈하고 부드럽게 하는 기능을 하는 역할과 동시에 다른 기능성 물질을 섞을 수 있는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해석했다. 한편, 화장품에 섞인 종유석 가루에는 여러 의미를 부여했다. 한 가지는 이 부장품의 주인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춘추전국 시대는 도교 학파가 유래하는 시점인 것과 도교 철학자들이 동굴을 새로운 탄생과 부활을 가능하게 하는 ‘자궁’에 비유하며 동굴에서 지내면서 수행하는 것을 즐겼던 것에 비춰, 도교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도교 학파의 사람들은 종유석을 음과 양 중에서 ‘양’에 해당하는 특정 동굴들에서 양의 기를 가진 신성한 액체가 모여 형성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런 만큼 도교적 의미에서 그 가루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청동 단지 속 화장품의 성분으로 특정되는 ‘월유(moon milk)’는 마른 상태에서는 가루지만 젖은 상태에서는 부드럽고 흰색의 진흙같은 성질을 띄어 얼굴에 발라 피부를 희게 할 수 있는 화장품으로도 적합한 성격도 가지고 있다. 이후 시기의 기록물들을 보면 화장품을 사용해 얼굴을 희게 하는 것이 문화적 자부심으로 그려지기도 한 것과 희게 칠을 한 얼굴은 피부의 결점이 가려지고 결이 정돈되어 보이게 하는 기능을 하며, 주름을 가려 젊어 보이게 하는 등 미적 보완 기능을 가져 귀족 계급에게 매력적이었을 수 있다고 연구진은 덧붙였다. 또,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분석된 얼굴 크림이 이후 시대의 여러 의학 서적들에서 설명하는 화장품 만드는 방법과 유사했다는 점이다. 기원전 168년경의 여러 서적에는 동물의 지방을 사용해 다양한 피부 질병들을 치료하는 방법들이 자세히 적혀 있는데, 그중에는 광물 가루를 섞어 화장용 얼굴 크림으로 사용하는 방법도 있었다. 이는, 고대 이집트에서 발견된 ‘올리브 오일’과 같은 지방질에 독성을 가진 ‘납’ 성분을 띄는 금속 가루를 섞어 만드는 식의 화장품 제조법과는 구별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연구진은 고고학적으로, 연구에 사용된 청동 단지와 비슷한 단지들이 비슷한 시기에 광범위하게 발견된다는 점도 이야기했다. 왕이나 왕비, 귀족과 같은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의 무덤에서 부장품으로 주로 발견되었는데, 이는 이미 이 시기에 이 같은 화장품이 고급 품목으로 널리 향유되었고, 이를 만들어 보급하는 특화된 화장품 산업이 이미 나타났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해석했다. 이번 연구는 2,700여 년 전 중국에서 귀족 남성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화장품 성분 분석을 통해, 이 지역에서 사용된 초기 화장품의 내용과 그 문화적, 기능적 의미, 그리고 당시 이미 화장품 제작이 산업의 형태를 띠고 유통 구조를 갖추었을 가능성을 제시하는 등 다양한 통찰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연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