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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월 초 돌아오는 노벨상 발표 주간이면 과학계와 문학계가 가벼운 흥분으로 들썩인다. 언론과 각계 전문가들은 올해의 주인공이 누구일지 예상 후보 목록을 만들고, ‘업계’ 사람들은 해외 배팅 사이트에서 각 후보의 승률을 재미 삼아 살핀다. 오랜 역사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노벨상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 권위 있는 상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여전하다. 그림 1. 이그노벨상은 매년 9월 기발하고 독특한 괴짜 연구를 한 사람들에게 상을 수여한다. (출처: shutterstock) 그런데 노벨상 주간에 앞서 매년 진행되는 또 하나의 이벤트가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대서양 건너 미국 북동부에서 열리는 9월 이그노벨상 시상식이 바로 그것이다. 하버드대 응용수학과 졸업자이자 과학 잡지 《있을 법하지 않은 연구 연보(Annals of Improbable Research)》를 창간한 칼럼니스트 마크 에이브러햄스가 1991년 만든 이 상은 ‘사람들을 웃긴 뒤 한 번쯤 생각하게끔 만드는(make people LAUGH, then THINK)’ 괴짜 연구를 한 사람에게 주어진다. 수상 부문은 때마다 다른데, 올해는 10개 부문의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어떤 황당한 연구가 이그노벨상의 선택을 받았을까? [물리학상] 일렬종대 오리 떼에는 이유가 있다? 그림 2. 올해 이그노벨물리학상은 오리 떼의 헤엄 대형을 유체역학적으로 분석한 연구자에게 돌아갔다. ‘정통 노벨상’과 똑같이 물리학 부문의 연구부터 살펴보자. 이그노벨물리학상은 20년의 시차를 두고 오리 떼의 헤엄 대형을 유체역학적으로 분석한 두 연구자에게 돌아갔다. 미국 웨스트 체스터대의 유체역학자 프랭크 피시 교수는 박사과정 중이던 1990년대에 어미 뒤에서 줄지어 헤엄치는 새끼 오리들의 모습을 보고 의아함을 느꼈다. 강이나 호수에서 일렬종대로 헤엄치는 오리 떼는 우리에게 무척 친숙한 이미지다. 그런데 왜 하필 이런 방식일까? 그림 3. (좌) 『동물 헤엄의 원리와 생리학』(1995)에 실린 피셔 교수의 오리 헤엄 대형 삽화. 제법 진지하다. 온라인에서 원문을 찾아볼 수 있다. (우) 위안 교수팀 연구에 사용된 오리 헤엄 대형 모델링 이미지. (출처: Digital Commons @ West Chester University, Journal of Fluid Mechanics) “길을 잘 모르는 어린아이가 부모 뒤를 쫓아가는 것과 같은 것 아니야?” 하고 넘길 법한 이 질문을 젊은 피시 교수는 기어이 모형으로 실험했다. 그의 결론은 일렬로 헤엄칠 때 만들어지는 소용돌이 덕분에 뒤쪽의 새끼들이 에너지를 덜 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바로 작년(2021년) 스코틀랜드 스트레스클라이드대의 유체역학자 지밍 유안 교수팀은 같은 문제를 컴퓨터 모델로 분석했고 선행 연구와 비슷한 결론을 얻었다. 진짜 노벨상이었으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이그노벨상 위원회는 두 연구 모두의 호기심을 높이 샀다. [생물학상] 무거운 뒤꽁무니를 끌고 짝을 찾다 그림 4. 온라인으로 진행된 2022년 이그노벨상 시상식에서 전갈 인형을 들고 연구 내용을 소개 중인 이그노벨생물학상 수상자들. (출처: Improbable Research 유튜브 캡쳐) ‘수상자 없음’인 화학 부문을 지나 생리의학 부문을 보면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웃음이 난다. ‘변비에 걸린 전갈은 짝짓기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올해의 이그노벨생물학상은 이 궁금증에 해답을 준 브라질 상파울루대의 두 연구자 솔리마리 가르시아-에르난데스와 글라우코 마차도에게 수여됐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도마뱀처럼 전갈 또한 포식자에게 자기 몸의 일부를 ‘넘겨주고’ 목숨을 부지하는 자절(自切) 행동을 한다. 이 행동은 수컷 전갈에게서 주로 관찰되는데, 자절하는 전갈은 꼬리나 다리 대신 독침이나 배설 기관같이 중요한 생체 기능을 하는 부위를 떼내기도 한다. 연구팀이 2021년 《통합 동물학(Integrative Zoology)》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항문을 잘라낸 전갈은 변을 배출하지 못해 이동이 둔해지지만 사망에 이르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그럭저럭 느린 속도로 짝을 찾아 번식을 한다고 한다. 엉뚱함에서 시작하는 세상 모든 연구 이그노벨상은 진짜 노벨상에 없는 신종 부문도 거침없이 만들어 낸다. 서로에게 매력을 느낀 두 사람의 심장박동수가 동기화되는 현상을 연구한 이들은 응용심장병상을 받았다. 생리 공학 부문의 상은 손잡이를 돌릴 때 손잡이 크기에 따라 손가락이 몇 개나 필요할까를 연구한 일본 치바 공대 연구팀에게 돌아갔다. 연구팀이 피험자 32명에게 각각 크기가 다른 손잡이들을 돌리게 한 결과, 손잡이 지름이 1센티미터보다 크면 손가락 세 개가, 2.5센티미터보다 크면 네 개가, 5센티미터가 넘으면 다섯 손가락이 전부 필요했다고 한다. 그림 5. 일본 치바 공대 연구팀은 문 손잡이를 돌릴 때 손잡이 크기에 따라 필요한 손가락 개수가 다르다는 연구로 이그노벨상을 수상했다. (출처: shutterstock) 황당무계함을 넘어 왠지 납득가는 결론에 공감이 가는 연구도 있다. 문학 부문 수상자 영국 에든버러대 프랜시스 몰리카 교수는 법률 문서가 난해한 이유를 ‘개념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글을 잘 못 쓰기 때문’이라고 결론내렸다. 그런가 하면 이탈리아 카타니아대 연구팀은 재능보다 운이 좋은 사람이 더 성공하기 쉽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분석한 「재능 대 운: 성공과 실패에서 무작위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연구로 이그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이 연구팀은 12년 전 직원들을 임의로 승진시키면 조직 효율이 오른다는 내용으로 이그 ‘경영학상’을 받은 바 있다. 나머지 부문에서는 사슴과 자동차의 충돌 피해를 예측하고자 충돌시험용 사슴 더미를 만든 스웨덴 공학자에게 안전공학상이, 항암 치료 부작용을 막는 데 기존 냉동 요법 대신 아이스크림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폴란드 바르샤바대 연구팀에게 의학상이, 고대 마야 문명의 도자기에 새겨진 관장 그림에 관한 다학제 연구에 예술역사상이 돌아갔다. 가십을 퍼뜨리는 사람이 언제 진실을 말하고 언제 거짓말을 말하는지를 분석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한 국제 연구팀에게는 평화상이 수여됐다. 내년 10월에는 ‘인류의 업적’을 하나 더 쌓는 역사의 궤적을 보기 앞서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궁금증을 탐구하는 우리의 모습에 먼저 눈길을 주면 어떨까? 글: 맹미선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