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우리는 외국에서 온 백인이나 흑인 등 다른 인종을 만나면 특유의 냄새를 맡는다. 반대로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은 우리에게 낯선 냄새를 느낀다. 하지만 우리든, 다른 인종이든 스스로가 풍기는 냄새는 거의 느끼지 못한다. 왜 그럴까?향수를 뿌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 더 이상 향수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해 더 뿌리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 독하게 느껴질 수 있다. 냄새가 심한 화장실에서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처음처럼 고통스럽지 않은 것도 비슷한 현상이다. 우리의 코는 어떤 불쾌한 냄새를 맡아도 쉽게 마비되어, 특정 냄새에 대해 장시간 반응하는 일이 흔치 않다. 코에 있는 후각 신경세포는 몹시 예민하여 후각을 자극하는 적은 양의 물질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반대로 진한 자극을 가진 냄새가 지속적으로 가해질 경우에는 그 물질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 특징도 가지고 있다. 후각이 특정 냄새에 무뎌지는 현상을 두고 ‘후각이 피로해졌다’는 표현을 쓴다. 후각은 민감한 만큼 쉽게 지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합리적인 신체 활동의 결과이다. 후각이 이렇게 특정 냄새에 쉽게 마비되는 것은 다가오는 새로운 냄새를 언제든지 맡을 수 있도록 예민함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이기 때문이다.야생의 동물을 생각해보자. 후각은 시각이나 청각보다 훨씬 훌륭하게 적을 탐지하는 감각이다. 접근해오는 적의 모습이나 소리는 감춰질 수 있지만, 냄새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문명화가 진행되면 후각은 시각이나 청각에 비해 덜 중요한 감각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지만, 생명체에게 후각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필수 감각인 것이다. 후각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때는 냄새쯤 못 맡아도 사는데 지장이 있겠냐고 무시하기 십상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사람은 맛도 잘 보지 못한다. 우리가 맛이라고 느끼는 감각의 무려 90%가 실제로는 후각을 통해 느끼는 것이다. 더불어 냄새를 맡지 못하면 상한 음식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해 배탈과 설사가 나기 쉽다. 후맹증인 사람들의 고통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주목 받지 못하지만 다른 감각 장애에 뒤지지 않는 고통을 준다. 후각은 인간의 감각 기능 중에 가장 민감한 감각이기도 하다. 포유류의 경우 냄새를 수용하는 유전자는 1천 여종으로 전체 유전자의 3%다. 특정 기능을 담당하는 유전자로는 수위를 다툴 정도로 많은 숫자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 이 1천 여종의 유전자 중 375개만이 실제로 작동한다. 직립보행과 도구의 사용, 문명의 진화와 함께 인간이 후각보다는 시각과 청각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간 인류 문명의 발달에서 소외된 감각으로 치부되던 후각이 새롭게 조명되는 기회를 맞았다. 2004년 노벨의학상은 ‘후각의 매커니즘’을 밝혀낸 미국의 신경생리학자 리처드 액설과 린다 벅이 수상했다. 이들은 냄새를 맡고 구별해내는 과정을 최초로 밝혀냈는데 이들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1만 개의 냄새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항상 곁에 있어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을 새롭게 보고 원리를 알아가는 일이야말로 과학이 주는 진정한 즐거움이다. (글 : 과학향기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