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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건물들, 성냥갑마냥 똑같은 아파트, 단조롭게 생긴 도로들. 이런 도심에 가로수조차 없다면? 도시인의 일상은 무척 지루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로수 덕분에 도시인도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봄의 신록은 생명의 약동을 느끼게 하며, 여름의 성록은 시민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한다. 가을의 단풍은 색채 향연을 음미하게 하고, 겨울의 앙상한 가지는 인생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최근 서울시는 율곡로, 강남대로 등 10개 간선도로를 ‘가로수 10대 시범가’로 지정하고 올해부터 2023년까지 단계적으로 특정 나무만 심은 거리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강남대로에는 마로니에로도 불리는 칠엽수, 신촌로는 목련, 영동대로와 동1ㆍ2로는 느티나무, 경인로는 중국단풍, 수색로는 벚나무, 율곡로는 회화나무, 왕산로는 복자기, 한강로는 대왕참나무, 남부순환로는 메타세콰이어를 심을 계획이다.그런데 과일나무는 맛있는 과일이 열려야 하고, 조경나무는 멋지게 생겨야 하는 것처럼 가로수가 되는데도 특정한 조건이 필요하다. 가로수가 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우선 기후와 풍토에 알맞은 수종이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넓지는 않지만 남북으로 길어 나무가 살아가는데 적합한 환경 요인의 편차가 크다. 제주도와 남쪽 도서, 남해안 일대는 소위 난ㆍ온대지역이라 상록활엽수종이 주된 식생을 이룬다. 제주공항에 내리면 열대성 수목인 야자나무가 도로 양편에 심어져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반면 서울은 온대 중부지역으로 낙엽활엽수종이 주된 식생을 형성하고 있다. 풍토에 적합한 수종을 심어야 별 탈없이 잘 자란다.그리고 잎의 크기가 클수록 좋다. 전 세계가 가로수로 가장 많이 심은 플라타너스는 매우 넓은 잎을 가지고 있다. 플라타너스의 넓은 잎은 자동차 소음을 막아주고 매연이나 먼지를 흡수하는 기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잎이 넓으면 여름에 짙은 녹음을 만들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가을에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을 청소하기 유리하다. 강남대로에 심게 될 칠엽수나 신촌로의 목련도 잎의 크기가 둘째라면 서러운 나무들이다.가로수는 도시의 햇볕, 건조, 열, 대기오염과 같은 온갖 스트레스를 이겨내야 한다. 이런 불리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병충해에 강한 나무가 가로수로 선택된다. 동1ㆍ2로와 영동대로에 심어질 느티나무는 상대적으로 대기오염에 약한 나무로 알려져 한 동안 가로수에서 제외돼 왔다. 하지만 최근 서울시의 대기오염이 줄면서 도심의 생태공원이나 도로변에 느티나무를 심는 곳이 많아졌다.더불어 가지를 끊어 나무 모양을 다듬어줄 때 견뎌 내는 힘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정서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소나무지만 가로수로 심어진 소나무는 찾아보기 어렵다. 소나무는 나무의 모양을 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나무 같은 침엽수는 옆으로 자란 가지를 자르면 위로 치솟고, 위로 자라는 가지를 자르면 옆으로 줄기가 펴져 자란다. 나무의 모양을 맘대로 만들기 힘들다. 반면 플라타너스나 버드나무는 주변의 간판이나 전선을 피해 가지를 잘라줘도 생육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이상한 냄새나 사람에게 해로운 물질을 만들어내지 않아야 한다. 은행나무는 가로수로 매우 적합하지만, 가을마다 썩은 냄새를 풍기는 열매를 거리에 떨어뜨린다. 또 버드나무도 봄철에 하얀 솜털처럼 보이는 종자를 흩날려 시민들에게 불쾌감을 준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이들 나무는 꽃가루를 만드는 수나무와 열매를 만드는 암나무로 나뉜다. 열매가 문제이기 때문에 수나무만 골라 심으면 된다. 이렇게 하면 불쾌감을 주지 않으면서 은행나무의 노란 단풍과 여인의 흩어진 머릿결 같은 버드나무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나무가 있는 길을 가는 사람의 마음은 품 넓은 나무를 닮게 된다. 남부순환로를 걷는 사람은 키 큰 위용을 자랑하는 메타세콰이어의 웅장함을 닮고, 왕산로를 걷는 사람은 일반 단풍나무보다 더 붉게 물드는 복자귀의 화사함을 닮을 것이다. 가로수는 항상 제자리에 맴돌고 있는 것 같지만 항상 변화하고 있다. 가로수 덕분에 도시인도 자연의 따스함을 배우게 되는 것은 아닐까. (글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