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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스웨덴에서 우유와 관련된 대규모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우유 해악론’이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 연구 결과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유는 몸에 해롭다’는 것이다. 우유를 많이 마신 사람들일수록 암과 심혈관 질환의 발생률이 올라갔으며, 그 결과 자연스럽게 사망 위험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우유는 몸에 해로운 것일까?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우유 혹은 우유(牛乳)로 대표되는 동물의 젖(인간은 소 이외에도 양, 산양, 염소, 말, 낙타, 야크, 물소 등의 젖을 식용으로 이용했다. 이 글에서 우유는 동물의 젖을 대표하는 용어로 사용된다)을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인류가 동물들을 길들여 가축화시키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 혁명이 시작된 1만 년 전부터였지만, 오랫동안 우유를 먹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대개의 성인들에게 우유는 영양 만점 간식이기는커녕, 소화 불량과 설사를 일으키는 일종의 식중독 물질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성인들이 우유를 소화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우유 속에 존재하는 유당(乳糖, lactose) 때문이다. 유당이란 포도당과 갈락토오스가 결합된 이탄당으로, 포유류의 젖 속에만 존재하는 형태의 당분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물론 사람 역시 포유류이므로 모유 속에도 유당이 존재한다. 그것도 우유보다 훨씬 더 많이.사실 유당은 포유동물의 아기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다. 하지만 유당 그대로는 이용할 수가 없기 때문에 락타아제(lactase)라는 효소를 이용해 유당을 포도당과 갈락토오스 형태로 쪼개어 이용한다. 포유동물의 아기들은 누구나 젖을 먹고 자라기에 락타아제를 분비하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락타아제의 생성 유무는 우유를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리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락타아제를 만들 수 없는 이들에게 우유는 안 먹느니만 못한 물질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유당은 분해, 흡수되지 않은 채 소화 기관을 그대로 통과하게 되고, 결국에는 소장에서 장내 미생물의 먹잇감으로 제공된다. 락타아제를 분비하는 장내 미생물들은 소화되지 않은 채 대량으로 들어온 유당에 환호하며 달려들지만, 사람은 이들이 한꺼번에 유당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으로 배에 가스가 차고 갑작스런 설사를 하는 증상, 즉 유당 불내증(lactose intolerance)으로 고생을 하게 된다.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사람은 처음부터 유당 불내증을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모유에는 우유보다 유당이 2배나 더 들어 있지만, 아기들이 유당 불내증으로 고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람의 DNA 속에는 유당을 분해하는 효소인 락타아제를 만들어내는 유전자가 존재하고, 아기들은 이 락타아제를 만들어내어 유당을 문제없이 소화한다. 하지만 락타아제는 대개 성인이 되면서는 더 이상 분비되지 않는다. 유당은 젖 속에만 들어 있고, 자연 상태에서는 성인이 되어서 젖을 먹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락타아제가 존재할 이유가 없기에 사람들이 나가버린 빈방의 불을 끄는 것처럼 락타아제 유전자의 스위치가 꺼지는 것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우유는 좋은 열량 공급원이 될 수 없었다. 우유가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먹거리의 역할을 차지하게 된 것은 두 번에 걸친 ‘우유 혁명’이 일어난 후였다.첫 번째 우유 혁명은 7000여 년경, 몸 밖에서 시작됐다. 우유를 가공해 ‘몸에 해롭지 않은 것’으로 바꾸는 비법을 알아낸 것이다. 일단 갓 짠 우유를 상온에 방치하면 우유 위에 크림층이 형성된다. 이것을 가공한 것이 버터인데, 버터는 락토오스(lactose) 성분이 거의 들어 있지 않아 먹어도 문제가 없다. 또한 우유를 발효시켜 만든 요구르트나 치즈의 경우, 발효 과정에서 미생물의 먹잇감으로 유당이 분해되기 때문에 유당으로 인한 소화 불량의 걱정이 없다. 이처럼 우유를 가공해 유제품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인류의 서식지를 북쪽 추운 지방과 건조한 목초지로 확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인간이 수렵, 채집, 농경이라는 3대 식량 생산 공정에 낙농(酪農)이라는 새로운 공정을 추가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먹기에는 적합지 않은 거친 풀들만 무성한 들판과 야산이 더 이상 황무지가 아니라 소나 양을 키워 젖을 얻게 하는 기름진 목초지로 기능함을 알았으니 말이다.두 번째 우유 혁명은 그로부터 약 천 년이 지난 후에 등장한다. 낙농이 발전하면서 유제품을 먹는 수요가 늘면서, 우유 그 자체를 마시는 습관도 생겨났다. 초기에는 아직은 유당 분해 능력이 있는 어린아이로부터 마시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 아이들은 자라면서 꾸준히 우유를 마셨고, 이러한 환경의 자극은 락타아제의 분비를 지속시키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것이 대를 이어 반복되면서 낙농을 주로 하는 민족들 사이에는 어른이 돼서도 락타아제 유전자(LP 유전자) 스위치가 꺼지지 않는 돌연변이를 지닌 구성원들의 수가 늘어나게 된다. 실제로 낙농이 발달한 영국과 북유럽 국가의 주민들의 유전적인 구성을 살펴보면, LP 유전자 지속 돌연변이의 비율이 90%를 상회한다. 반대로 우유를 마시는 관습이 거의 없었던 일본이나 남부 아시아 국가의 성인들에게 이 돌연변이의 발생 확률은 0%에 가깝다.식량이 부족했던 시절, 우유를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은 일종의 생존 경쟁력이 됐을 것이다. 특히나 우유는 포유동물이 어린 새끼들을 단기간에 성장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단백질과 지방의 함유량이 높게 조성돼 있기 때문에, 유당 불내증만 없다면 섭취량 대비 고칼로리, 고단백, 고지방의 3박자가 갖춰진 좋은 음식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우유 속에 든 칼슘과 비타민 D는 햇빛이 부족한 고위도 지방에서도 구루병과 골다공증에 걸리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도록 도움을 주었을 테니 이 역시 장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인류학자들은 성인이 우유를 마실 수 있게 만드는 LP 유전자 지속 돌연변이는 춥고 건조한 유럽 지역에 인류가 정착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이는 전통적으로 ‘우유는 몸에 좋은 음식’이라는 가치관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최근 들어 제시되는 ‘우유 해악론’은 인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수천 년 전과는 다르게 변화됐다는 데 기원을 두고 있다. 우유는 여전히 칼슘과 철분을 비롯한 비타민과 무기질의 좋은 공급원이며, 양질의 단백질이 포함된 ‘영양학적으로 우수한 식품’이다. 하지만 영양학적으로 우수하다는 말이 영양 과잉으로 인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과 동일 시 되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우유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곳은 영양소 부족이 아니라, 영양소 과잉이 문제가 되는 지역이다. 우리는 이제 우유 외에도 충분한 칼로리와 영양소를 섭취하며, 부족한 비타민과 무기질은 간편한 알약으로 대치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경우, 지나친 우유의 섭취는 지방과 열량의 과다 섭취로 이어지게 되고, 이는 비만과 성인병의 발생 비율을 높이는 하나의 원인이 된다.게다가 낙농업이 하나의 거대 산업이 된 현대 사회에서 우유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처럼 취급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우유 생산량을 증가 시키기 위한 성장 호르몬 유도제 투입, 기형적이고 비윤리적인 사육 시스템, 유전자 조작을 통한 형질 전환 등-과 얽히게 됐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우유 속에는 자연 속에서 방목된 가축의 젖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성분들이 포함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조건적인 ‘우유 예찬론’과 ‘우유 해악론’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우유 섭취량과 섭취 방법을 결정하는 현명한 우유 섭취의 자세가 아닐까. 아인슈타인의 이름을 우유명으로만 기억하지 말고, 아인슈타인처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내게 맞는 우유를 섭취하는 자세 말이다.글 :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