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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박테리아가 생산하는 전기를 실생활에 사용하거나, 이를 응용해 발효제품의 맛을 입맛에 맞게 바꿀 수 있을까. 또 장 건강에도 활용이 가능할까? 최근 인체 장내 미생물군에서 전기를 발생시키는 박테리아가 다수 발견돼 연구팀은 이의 활용 가능성을 놓고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다. 전기를 만들어내는 박테리아는 지금까지 광산이나 호수 바닥 등 이색적인 환경에서 주로 발견돼 왔다. 그런데 등하불명(燈下不明)이라고, 과학자들은 인체 장내에 서식하는 여러 종의 박테리아가 전기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연구팀은 설사를 일으키는 리스테리아균(Listeria monocytogenes)이 지금까지 알려진 전기 발생 박테리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한다는 사실을 발견해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온라인 12일자(인쇄판 10월4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장내에 서식하는 수백 종의 박테리아가 같은 방식으로 전기를 만들어낸다고 보고했다. 장내 병원균이나 유익균 상당 수가 전기 발생 이들 전기 스파크를 일으키는 박테리아들은 장내 미생물군의 일부를 이룬다. 이 가운데 많은 수가 감염시 인체와 동물에서 유산을 일으킬 수 있는 식품매개 리스테리아증 같은 병원성이다. 괴저(Clostridium perfringens)와 병원 감염(Enterococcus faecalis) 그리고 질병을 일으키는 연쇄상 구균(streptococcus)도 전기를 발생시킨다. 이와 달리 장내 전기 생산 박테리아 중에는 요구르트를 발효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락토바실러스(Lactobacilli) 같은 유익균(프로바이오틱스)도 적지 않다. 댄 포트노이(Dan Portnoy) 분자 및 세포생물학 교수는 “병원균이나 유익균 혹은 발효균으로서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많은 박테리아가 전기를 일으킨다는 사실은 전에는 미처 몰랐다”며, “이 박테리아들의 전기 발생을 연구하면 병원균들이 인체를 감염시키는 방법과 건강한 장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견은 현재 미생물로부터 생체 배터리를 만들어내려는 연구자들에게 희소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녹색’ 생물에너지(bioenergetic) 기술을 활용하면 예를 들어 쓰레기 처리 공장 같은 곳에서 박테리아로부터 전기 생산이 가능하다. 금속으로 ‘호흡’하는 박테리아 박테리아는 우리가 산소를 마시는 것과 같은 이치로 전기를 생성한다. 즉 대사 중에 만들어지는 전자를 제거하면서 에너지 생산을 하는 것이다. 동식물은 생성된 전자를 모든 세포에 있는 미토콘드리아 안으로 이동시킨다. 반면 인체의 장이나 알코올, 치즈 발효액, 산성 광산 같은 무산소 환경에서 사는 박테리아는 미토콘드리아 같은 기구가 없어 다른 전자 수용체를 찾아야 한다. 지질학적 환경에서 그 수용체는 철이나 망간 같은 세포 바깥에 있는 광물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그 박테리아들이 철이나 망간을 ‘호흡’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전자를 세포에서 광물로 이동시키는 데는 특별한 화학반응 단계가 필요하다. 이른바 세포외 전자 전달 사슬이라 불리는 것으로, 이를 통해 전자는 미세 전류로 흘러간다. 일부 과학자들은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 이 사슬의 실용 가능성을 탐구해 왔다. 박테리아가 가득 든 병에 전극을 부착시키면 전기를 발생시킬 수 있다. 새로 발견된 세포외 전자 이송 시스템은 이미 알려져 있는 이송 체인보다 간단하고, 산소 수준이 낮을 때와 같이 박테리아가 꼭 필요로 할 때만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간단한 전자 이송 체인은 단일 세포벽을 가진, 그람-양성균으로 분류되는 미생물에서 발견됐다. 이 균들은 비타민 B2 유도체인 플라빈이 많은 환경에서 서식한다. 논문 제1저자인 샘 라이트(Sam Light) 박사후 연구원은 “이들 박테리아의 세포 구조와, 비타민이 풍부한 서식 환경으로 인해 세포 밖으로의 전자 이동이 훨씬 쉽고 경제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우리는 기존에 연구된 미네랄-호흡 박테리아의 경우 세포외 전자 이송이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를 사용하는데 비해, 이번에 새로 확인된 박테리아들은 그것이 ‘쉽기 때문에’ 사용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박테리아 전류 500μA까지 측정 라이트 연구원은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의 캐롤라인 아조-프랭클린(Caroline Ajo-Franklin) 박사와 팀을 구성해 이 시스템이 얼마나 견고한가를 살펴봤다. 아조-프랭클린 박사는 살아있는 미생물과 무기물질과의 상호작용을 탄소 포획과 격리 및 바이오-태양 에너지 생성에 응용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아조-프랭클린 박사는 전극을 사용해 박테리아에서 나오는 전류를 500μA까지 측정함으로써 실제 전기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은 알려진 전기 발생 박테리아와 같이 실제로 세포 당 1초에 10만개의 전자를 만들어냈다. 특히 라이트 연구원의 흥미를 끈 것은 치즈나 요구르트, 사워크라우트 생산에 필수적인 락토바실러스균에 이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점. 그는 전자 수송이 치즈나 사워크라우트의 맛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이런 사실은 사람들이 미처 몰랐던 거대한 박테리아 생리학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인위적으로 조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트 연구원과 프로노이 교수는 이들 박테리아가 왜 그리고 어떻게 이런 독특한 시스템을 개발하게 되었는지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전자를 두개의 세포 벽보다는 하나의 세포 벽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용이하다는 단순성, 그리고 흔한 플라빈 분자를 전자 제거에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이 박테리아들로 하여금 산소가 풍부하거나 부족한 환경 모두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한 것으로 연구팀은 보고 있다. |